blue blue diary

디그니타스에게 메일을 보낸다

김보통 2021. 6. 3. 22:12

디그니타스 홈페이지 :  www.dignitas.ch

디그니타스 메일 : dignitas@dignitas.ch

 

>디그니타스에 대해 궁금한 사람은 이 글을  쭉 내려서 후반부만 읽으면 된다.

 

삶의 끝을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둘러 쌓인 평온한 죽음일  수도 있고

갑작스러운 사고사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어쩐지 자꾸만 자살할 것만 같다.

그게 어떤 형태의 죽음이라도 내가 그걸 계속 원했으니까...

 

 

하지만  자살은 두 가지 면에서 나를 멈추게 한다.

 

1. 가족

2. 실패의 후유증

 

 

말을 하지 않아도 젊은 나이에 갑작스러운 불분명한 원인의  죽음은 자살을 암시한다.

 

장례식에 사람들은 많이 오지도 않겠지만,

와도 참 불편해 할 것이다.

 

끝나더라도 나의 가족을 만나게 되면 안쓰러워하겠지.

어쩌면 대체  무슨 문제가 있었길래 자살을 선택했는지를 두고 가볍게 말을 전할지도  모른다.

 

내심 자신과  아주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아닌 것을 위안 삼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모든 반응은 상처가 될 것이다.

 

가족들은 죄책감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을지도 모른다.

 

자살 유가족의  자살률은 일반인보다  약 8배가량 높다고 한다.

우울증이 발병할 가능성은  7배 정도 높고.

 

하긴 이런 객관적인 수치를  떠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살을 한다면

나 역시 죄책감과 슬픔을 견디기 힘들  것  같다.

 

내가  우울증의 구질구질함과 끈질김을  잘 알고 있어서 하는 말인데

이 병은 그냥 나 혼자 앓는 걸로도 족하다.

 

정말로

 

내 인생에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선택지를 지워버린 이유도 이것이다.

설사 완치되더라도 우울증은 유전에 분명한 영향을  받으며

이 병은 언제라도 재발할 거고,

특히 내가 양육 중이라면 아이는 그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으니

또 다른 불행한 사람을 하나 만들어 내는 고속도로  개통이나 다를 바 없지.

 

하여튼 내가 우울증을  앓은 만큼 나로 인해

주변의 다른 사람이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을 최대한 낮추고 싶다.

 

안락사는 좀 존엄해 보이니까 이런 게 덜하지  않을까?

 

그리고 실패의 후유증말인데,

의학과  과학의 발달로 자살하는 사람을 기어코 살려 내는 방법이 많아졌다.

 

농약이나 약등의 음독자살은 위세척으로 잘 살려내고 큰 후유증을 남기고

어지간한 리스트컷으로는 죽지 않는다는 게 잘 알려져 있고

투신이나 질식은 성공확률은 높을지라도 실패시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렇다고 뭐 어디에 뛰어들어서 남 인생에 개똥물을 퍼붓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죽는데 너무 오래 걸리는 방법은 고통이 길 것 같고,

하다가 그만두고 싶어 질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실패하지 않고 덜 아픈 방법이 뭘까 고민했는데

 

안락사 혹은 총기 자살 정도였다.

 

필리핀이라도 가서 총을 구해야 하나 생각했는데 

 

(근데 좀 웃기다

늦은 밤 으슥한 술집에서 

"너 총 있는 애 아니? 하나만 죽여줄 수 있어? 아 걱정하지 마 죽는 사람은 나란다. 죽이고 돈은 주머니에서 꺼내 가. 근데  되도록이면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신체 훼손 없이  경찰에 신고해줄래?" 이런 말을 걸고 다녀야 하나?)

 

 

스위스에서 외국인 안락사를 허용해주는 건 알고 있었다.

말기암 환자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범위에 정신적  질병이 포함되는 건 처음 알았다.

네덜란드만인줄 알고 네덜란드 국적취득도 생각해봤는데 웃기다 죽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노력을?

 

대표적인 단체가 디그니타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FAQ를 읽어보니 일단 가능은 한 거 같다.

 

다만

<어렵고  복잡한 절차를 통해 진단, 원인, 시도된 모든 치료법에 대한 증거, 판단력 및 분별력에 관한 심층적인 평가 등의 의료 파일>

의  품질에 크게   좌우된다고 한다.

 

특히  정신질환의 증상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말하자면 <제정신일 때 죽음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기간, 고통의  수준, 치료법을 얼마나 시도했는지 등에 대한 기준이  따로 있는지 궁금해서 메일을 남겼다.

 

 

근데 정말로 다시 한번 말하는데  나는 지금 당장 안 죽을 거다.

빠르면  한 40대 늦으면 60쯤 된다면

그러니까 나의 부모님이 안 계실 때쯤

 

누군가가 나의 죽음에 큰 죄책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을 때,

그때 생각해볼 거다.

 

디그니타스에게 도움을 요청한 사람의 70%인가 80%는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선적으로 디그니타스는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다른 질병은 몰라도 정신적인 이유로 요청한 사람은 약 3,4개월 간의 치료도 병행한다. 

이 과정에서 포기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나는 정말로 죽기 위해서 디그니타스에게 메일을 보낸 게 아니다.

 

죽음의 끝을 보게 되면 살고 싶어지지 않을까?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이 후회한다고 하는 말처럼.

 

그게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역설적이게도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충동적인 죽음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끝이 존엄하길  바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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